로더
전자서명란
서명초기화
확인

스킵 네비게이션


커뮤니티

이타의 유럽축구이야기

[세비야-레스터] 세비야의 지배, 그리고 겁먹었던 레스터의 문제점과 희망
병장 서현규 | 2017-02-23 17:04:29 | 900




"우리가 여전히 약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뛸 것입니다."




챔피언스리그는 전 세계 최고의 팀들이 참가하는 대회이다. 그리고 가장 수준이 높은 축구 경기들로 이뤄져 있다. 세계 최고의 축구클럽인 바르셀로나와 아스날도 여기서 4-0, 5-1 패배를 거두었고, 지난밤 잉글랜드 맨체스터에서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경기가 펼쳐졌다. 이렇게 치열했던 2주간의 경기 끝에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경기가 모두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 가운데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한 '리그 강등권' 레스터 시티는 어젯밤 8강 진출에 대한 희망을 잡게 됐다. 세비야 원정에서 극적인 만회골을 성공시키며 2-1 패배를 거둔 것이다. 원정다득점 원칙이 적용되는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무대 1차전에서 원정팀이 2-1 패배를 거뒀다는 것은 나름 선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양 팀 감독의 말처럼 이번 경기 그들의 수준 차이는 어마어마했지만, 결과는 그 차이를 따라주지 않았다. 

-유기적 포메이션의 대명사와 돌풍을 일으켰던 조직적 포메이션의 대결


이번 경기 양 팀 선발 라인업


세비야와 레스터 시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둘의 감독 성향이라 할 수 있다.

세비야를 이끄는 호르헤 삼파올리는 매우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감독으로써, 전체적인 포메이션에 얽매이지 않고 매우 자유로운 플레이를 주문하는 감독이다. 때문에 위 그림에 나온 세비야의 포메이션은 단순히 '이번 경기 이런 선수들이 선발로 나섰다.'라는 정보만 제공할 뿐, 세비야 선수들이 어느 위치에서 뛰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반면 레스터 시티를 이끄는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는 조직적인 4-4-2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한 방'을 노리는 감독이다. 매우 수비적인 축구를 구사한다. 때문에 팀은 경기 내내 4명의 수비 라인과 4명의 미드필더 라인, 그리고 2명의 공격수로 구성됐다. 

-레스터를 계속 흔들었던 삼파올리



세비야의 이번 경기 공격 형태와 평균적 루트


매우 수비적인 성향을 띤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를 준비하면서 삼파올리 감독이 선수들에게 원했던 것은 크게 2가지였을 것이다. 경기의 지배와 상대 수비 진영을 계속 흔드는 것. 이것이 딱 그의 성향에 알맞은 삼파올리식 레스터 시티전 준비 요소였다.

때문에 세비야는 경기 내 실질적인 공격 형태와 루트를 위 그림과 같이 가져갔다. 포메이션 상 왼쪽 수비수 자리에 위치해있는 세르히오 에스쿠데로는 왼쪽 중앙 미드필더 자리까지 올라갔으며, 왼쪽 윙백으로 표시되어있는 파블로 사라비아는 사실상 오른쪽 윙어 역할을 맡았다. 또한 호아킨 코레아와 사미르 나스리가 포메이션 상의 위치보다 매우 밑선으로 처져 플레이했다.

이러한 삼파올리 체제 세비야의 핵심 요소는 크게 3가지로 손꼽을 수 있다. 첫째는 선수들 간의 지속적인 스위칭이다. 위 그림을 보면 한 포지션 자리에 2명의 선수 이름이 적힌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2명의 선수들이 서로 지속적인 스위칭을 진행하며 경기를 풀어나갔다는 뜻이다. 비톨로가 왼쪽 윙백 자리를 맡을 때는 에스쿠데로가 왼쪽 미드필더 자리를, 반대로 에스쿠데로가 왼쪽 윙백 자리를 맡으면 비톨로가 왼쪽 미드필더에 배치됐다. 세비야의 스위칭은 경기 내내 매우 유기적으로 일어났다. 오른쪽 윙어 역할을 맡은 사라비아가 왼쪽 측면으로 들어올 때도 있었다. 평소보다 처진 위치에서 플레이를 한 나스리는 공격시 경기장 곳곳을 넓게 돌아다니며 전개를 도왔고, 스트라이커 요베티치는 측면으로, 코레아는 밑선으로 계속 내려와 볼을 받아줬다. 



이번 경기 나스리의 히트맵과 패스맵 (c)squawka.com


둘째는 공격과 수비 진영의 인원 배치가 비교적 뚜렷하다는 것이다. 삼파올리 감독이 주문한 스위칭은 공격 진영에서만 일어날 뿐, 공격 진영과 수비 진영 모두를 오가는 종적인 스위칭은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이 두 진영을 모두 활발하게 옮겨 다닌 선수는 사미르 나스리 하나뿐이었다. 빌드업시에는 렁글레가 왼쪽 측면으로 넓게 벌리고, 은종지가 그 사이로 내려와 백3를 형성했다. 그리고 프리롤을 맡은 나스리가 수비 진영까지 내려와 빌드업에 참여하거나 볼을 받아준다. 이번 경기 세비야의 빌드업은 주로 라미, 렁글레, 은종지, 나스리로 이뤄진 4인 체제로 이뤄졌으며, 상황에 따라선 오른쪽 윙백 마리아노까지 내려왔다.  

셋째는 공격시 뚜렷한 1차적 위치 배정을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앞서 소개했듯 세비야는 이번 경기에서 '경기의 지배'와 '상대 수비 진영을 흔드는 것'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고 하였다. 때문에 1차적으로 좌/우로 넓게 벌려줄 선수들이 최소 한 명씩은 필요했으며, 궁극적 목표인 골을 넣기 위해 최전방에 서있는 스트라이커도 위치 배정을 지켜야 했다. 1차적 위치는 지키되, 비톨로가 왼쪽에서 중앙으로 파고들던지, 최전방의 요베티치가 측면으로 빠져나가든지 등의 2차적 위치는 자유로웠다. 

세비야의 이번 경기 전체 히트맵과 크로스 맵 (c)squawka.com


세비야는 레스터 시티의 수비 진영을 흔들기 위해 측면을 우선적으로 노렸다. 이들은 72.5%의 점유율을 유지하며 경기를 지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으로 21%만의 공격을 전개했다. 그 결과 위 세비야는 측면에 매우 치중되어있는 위 히트맵을 기록하게 되었으며, 총 25번의 크로스를 시도했다. 그리고 이중 1번의 크로스가 성공으로, 3번의 크로스가 키패스로, 1번의 크로스가 어시스트로 기록됐다. 전체적으로 매우 위협적인 크로스를 올린 것이다.

-세비야를 막아선 레스터와 그들의 문제점

그렇다면, 레스터는 세비야의 위와 같은 지배에 당하면서도 어떻게 2실점만을 허용할 수 있었을까?



레스터시티 중앙 미드필더들의 활약


가장 큰 이유로는 레스터 시티의 두 중앙 미드필더, 대니 드링크워터와 윌프레드 은디디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세비야가 측면을 흔들면서 레스터 시티 수비진의 균열을 노릴 때, 코레아와 에스쿠데로가 위치한 중앙으로 공격을 전개하면 은디디와 드링크워터가 이들을 막아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중앙에서 3, 4명이 참여하는 세비야의 중앙 패스 게임을 은디디와 드링크워터 2명의 선수만으로 저지했다는 것이다. 이날 레스터 시티의 2톱은 수비적인 경기를 운영하는 셈치고 수비 가담에 매우 호의적이지 않았다. 때문에 수비 라인을 보호하는 중앙 수비는 드링크워터와 은디디, 두 선수가 해내야 했는데 이들이 수비시 중앙을 완전히 통제한 것이다.

드링크워터와 은디디는 각각 평점 7.1, 7.0점을 부여받으며 이번 경기에서 대활약한 피터 슈마이켈과 골을 성공시킨 제이미 바디에 이은 높은 평점을 기록했다. (whoscored.com 기준또한 이들은 14번의 태클 시도, 6번의 클리어링과 인터셉트를 해내며 레스터 시티의 수비진에 큰 공헌을 했다.  



세비야의 키패스/어시스트 맵(왼쪽 그림 주황색이 키패스, 파란색이 어시스트)과 레스터 시티의 클리어링 맵(오른쪽 그림 파란색 표시가 헤딩 클리어링, 초록색 표시가 일반 클리어링) (c)squawka.com


이렇듯 세비야가 은디디와 드링크워터가 지키고 있는 레스터 시티의 중앙을 뚫어내지 못하다 보니, 이들은 측면에서 중앙으로 연결되는 공격이 아닌 측면에서 측면으로만 연결되는 공격을 전개해야 했다. 물론 이들의 이 시도는 매우 훌륭했다. 위 세비야의 키패스/어시스트 맵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측면에서 매우 좋은 공격을 펼쳐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좋은 찬스를 최종적으로 골로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위 왼쪽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레스터 시티는 이번 경기에서 총 28번의 클리어링을 해냈는데, 이중 17번이 페널티 박스 안에서 진행됐다. 이것이 레스터 시티가 가장 잘 하는 것이다. 공중볼에 매우 능한 센터백 후트와 모건을 이용하여 페널티 박스 안 클리어링을 해내기. 세비야는 이들의 단점인 발밑을 노려야 했는데, 공격 루트가 측면으로만 국한된 상황에서 후트와 모건의 발밑을 노리기란 매우 어려웠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앞서 소개한 은디디와 드링크워터의 중앙 수비가 더욱 빛났던 것이며, 측면에서 땅볼 크로스가 연결되지 않게 몸을 사리지 않은 윙백들의 공헌도 결코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세비야가 pk를 얻어낸 장면과 첫번째 골 장면을 복기해보자. 12분에 일어난 세비야의 pk장면 경우, 마리아노가 오른쪽에서 올린 크로스가 레스터 수비진들의 헤딩에 의해 코레아의 발밑으로 연결되었다. 여기서 코레아의 민첩함으로 pk를 만들어냈는데, 이는 레스터 수비진의 '발밑'단점이 완벽하게 적용된 장면이었다. 또한 세비야의 첫번째 골 장면도 왼쪽에서 올린 에스쿠데로의 크로스가 후트와 모건을 넘어 사라비아의 머리에 완벽히 닿아 성공된 득점이었다. 이 역시 레스터 수비진의 공중볼이라는 장점을 상쇄시켰기에 가능한 득점이었고, 매 세비야의 측면 공격에게 이런 완벽한 크로스를 기대하기란 힘들었다.  



레스터 시티의 전방 압박 문제점


다만 이번 경기 레스터 시티의 문제점이라면 이들의 전방 압박이 너무 어설펐다는 것이다. 너무 어설퍼 전방 압박으로 가져갈 수 있는 이점은 얻어가지 못하고, 그 리스크만 떠안게 되었다. 

레스터 시티는 위 그림과 같이 앞선 스트라이커 2명을 필두로 전방 압박을 진행하였는데, 세비야는 앞서 소개했듯 빌드업 상황에 4-5명의 숫자를 투입하여 선수들의 공/수 진영 배치를 뚜렷이 하였다. 때문에 2명의 스트라이커만으로 세비야의 빌드업을 저지하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여기서, 레스터 시티의 미드필더 진영은 공격수와의 간격 유지에 따라 전진하였는데, 이들의 수비 라인은 발이 매우 느린 후트와 모건이 센터백으로 배치되어있던 터라 라인을 미드필더 진영에 따라 쉽사리 전진시키지 못했다. 때문에 레스터의 전방 압박시 수비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 사이의 공간이 매우 벌어졌다.

세비야의 빌드업 자원들은 레스터 2명의 공격수만 벗겨내면 앞선의 공격 자원들에게 쉽사리 패스할 수 있었고, 볼을 받은 중원 자원들은 레스터의 한 줄 수비만 벗겨내면 됐기에 수비 진영에서 공격 진영까지 볼을 운반하기가 매우 편했다. 이 과정에서 세비야의 공격 전개를 막기 위해 후트가 수비 라인을 한 번 올렸는데, 여기서 모건과의 오프사이드 트랩이 맞지 않아 2번째 실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한 마디로 레스터 시티의 잘한점과 문제점이 한 번에 드러난 경기였다. 하지만 여기서 슈마이켈의 신들린 선방이 있었기에 2-1패배를 할 수 있었고, 세비야가 경기를 조금만 더 유연하게 대처했었더라면 이보다 좋은 결과로 끝낼 수 있었을 것이다.

레스터 시티의 또 다른 동화가 펼쳐질지 말지 결정되는 날은 한국 시간으로 3월 15일 4시 45분이다. 과연 그날은 잉글랜드가 또다시 파랗게 물들을까? 자신들이 약자라고 인정한 라니에리 감독과, 이번 일전이 챔피언스리그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압도적인 경기였다는 말을 언급한 삼파올리 감독의 싸움은 약 3주 뒤에 결판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