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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나폴리] 3월의 결과를 알 수 없게 만든 나폴리의 저력
병장 서현규 | 2017-02-20 20:30:35 | 905



지난주 밤 레알 마드리드는 나폴리에게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3-1 승리를 거뒀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홈경기였다. 인시녜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이변이 일어나는가 했으나 역시 레알 마드리드는 세계 최고의 클럽이었다. 호날두, 라모스, 크로스 등 월드 클래스급 선수들로만 이뤄진 그들의 경기장에서 나폴리는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이 경기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동시에 3월달에 펼쳐질 16강 2차전의 최종 결과를 알 수 없게 만드는 경기이기도 했다. 마우리시오 사리감독이 이끄는 나폴리는 왜 그들이 최근 최고의 폼을 보여줬는지 납득할만한 경기를 펼쳤다. 레알 마드리드가 동점골을 성공시키기 3-4분 전까지, 경기 시작 후 13-14분까지는 그들이 가장 잘하는 플레이를 실현했다.

-대형은 같지만 스타일은 정반대인 양 팀의 4-3-3 대결   



양 팀 이번 경기 선발 라인업


레알 마드리드를 이끄는 지단과 나폴리의 사령탑 사리는 모두 4-3-3 포메이션을 주로 삼는 감독이다. 양 팀 모두 같은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최근 매우 좋은 성적을 기록했는데, 이 둘의 차이점이라면 대형상으로는 배치가 똑같았지만 그 속의 스타일이 180도 달랐다는 것이다. 경기 시작 전 김태륭 해설위원이 언급한 말처럼 레알 마드리드는 조직적인 4-3-3 포메이션을, 그리고 나폴리는 매우 역동적인 4-3-3을 구사했다.

-나폴리가 베르나베우에서 보여준 저력과 패기

나폴리가 스페인에서 펼쳤던 경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앞서 소개한 대로 선수들이 매우 역동적이었던 한편 전체적인 형태나 볼 점유권에 있어서 홈팀 레알 마드리드에게 절대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종합/유효 슈팅 숫자는 압도적으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볼 점유율, 공중볼 승리 횟수, 태클, 볼을 빼앗긴 횟수(이것은 필자가 수치가 적은 팀이 승리한다고 봄) 등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보다 더 좋은 수치를 기록했다. (물론 매우 근소한 차이지만.)



이번 경기 양팀 센터백의 히트맵 (c)squawka.com


나폴리는 베르나베우에서 매우 공격적인 경기를 운영했다. 그들은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레알 마드리드의 골문을 향해 공격하고 상대를 막아냈다. 그 사실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위 양팀 센터백의 히트맵이다. 나폴리의 센터백인 쿨리발리와 알비올은 골문 바로 앞 지점에서부터 하프라인까지 역동적으로 옮겨 다니며 경기 중 수비 라인의 높이를 수시로 변경했다. 공격시에는 하프라인까지 진출하여 미드필더진의 뒤를 받쳐줬고, 수비시에는 뛰어난 오프사이드 트랩을 구사하며 상대 공격 라인을 막아냈다. 레알 마드리드는 이번 경기에서 총 7번의 오프사이드에 걸렸다.  



나폴리의 이번 경기 공격 형태(좌)와 방향 전환시 움직임(우)


나폴리가 이와 같이 베르나베우 원정인데도 불구하고 높은 수비 라인을 설정했던 이유는 이들의 공격 방식 때문이다. 경기 중 김태륭 위원이 계속 언급했던 내용처럼 나폴리는 공/수 전환이 매우 빠른 팀이다. 전방 3톱의 인시녜, 메르텐스, 카예혼 모두 속공에 강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이고, 스페인 원정인 만큼 나폴리가 골을 넣는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지공 상황이 아닌 속공 상황에서 상대 골문을 여는게 조금 더 확률 높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수비 라인을 매우 높게 설정한 것이다. 수비 라인이 전진하면 전진할수록 팀의 전체적인 진영이 올라간다. 그리고 진영이 올라갈수록 상대 골문과의 거리는 가까워진다. 이는 곧 수비 라인이 전진된 상태에서 시도하는 역습이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펼치는 역습보다 더 짧은 거리를 주파한다는 것을 뜻한다. 더 짧은 거리를 주파하면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상대 골문에 도달할 수 있고, 역습을 시작해서 짧은 시간 내에 슈팅 찬스를 가져가는 것이 비로소 위협적인 역습이라 할 수 있다. 즉, 수비 라인이 전진된 상태일수록 그 역습의 성공 확률이 비교적 더 높다는 뜻이다. 이것이 나폴리가 수비 라인을 높게 설정한 전체적인 이유이자 틀이다.    

나폴리가 수비 라인을 전진시킨 이유에 대해 섬세한 국면으로 들어가 보자면 이들의 공격 형태를 들 수 있다. 앞서 소개했듯 이들은 매우 역동적인 4-3-3을 구사한다 하였는데, 이 '역동적'이라는 표현은 나폴리의 선수들과 그들이 소유하는 볼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선수들은 공격 시 정해진 포메이션에 얽매이지 않은 채 활동 범위를 매우 넓게 가져갔고(물론 전체적인 틀은 정해졌지만), 볼은 선수들끼리 매우 빠르게 공유되었다. 한 선수가 공을 오래 만지는 일이 흔치 않았다.   

사리 감독이 정한 나폴리의 공격시 전체적인 틀은 위 그림과 같다. 4-3-3의 공격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이 좁은 간격을 유지하도록 하며, 좌우 미드필더는 반대쪽 측면으로 공격이 전개될 시 중앙으로 좁혀 볼 주위의 수적 우위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 그리고 스트라이커 메르텐스는 폴스 나인 유형의 임무를 맡아 밑선 공격의 연결 고리가 되주었고, 왼쪽 공격수 인시녜 역시 메르텐스와 비슷한 역할을 맡되 측면으로 빠질 때는 한 번에 벌려줬다. 그리고 카예혼은 인시녜와 메르텐스에 비해 팀의 패스 게임에 적게 참여했다. 그는 오른쪽으로 넓게 벌린 채 마르셀로의 뒷공간을 노렸다. 왼쪽 윙백 굴람에 비해 오른쪽 윙백 하사이의 전진 능력이 비교적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폴리는 이번 경기에서 왼쪽 방향으로 41%의 공격을 전개해나간 반면 오른쪽 방향으로는 28%의 공격만을 시도했다. 이 선수들에 더해 나폴리가 공격을 전개하는 측면의 윙백들까지 이들의 공격 전개 상황에 가담했다. 그렇게 수비 라인은 반대쪽 윙백과 2명의 센터백으로 이뤄진 백3가 지키게 되었고, 전방에서는 6-7명의 선수들이 직접적인 공격 전개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인시녜와 카예혼의 이번 경기 패스맵 (c)squawka.com


위와 같은 요인 때문에 나폴리는 수비 라인을 높게 전진시킬 수밖에 없었다. 횡적으로는 윙백들이나 공격수들이 넓게 벌리되, 종적으로는 공격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이 좁혀 역동적인 볼 공유의 진영을 만들었다. 때문에 여기서 미드필더 라인과 수비 라인 사이의 공간이 벌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쿨리발리와 알비올이 그에 따라 전진해야 했다.

앞서 소개했듯 메르텐스와 인시녜가 폴스 나인과 비슷한 임무를 맡아 공격 진영에서 비교적 내려와 플레이를 하였기 때문에 수비진과의 거리도 좁아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곧 수비 라인에서 공격진까지 곧바로 연결되는 패스의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폴리의 전체적인 틀에 맞춘 공격 전개, 그리고 높은 수비라인과 메르텐스/인시녜의 폴스 나인에 의한 거리 감소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득점이 바로 나폴리의 선제골 장면이었다.



-'그래도 레알 마드리드'라는 생각을 들게 한 홈팀의 무서운 반격
 
나폴리의 높은 수비 라인을 기반으로 한 경기 접근 방식에 레알 마드리드는 호날두, 벤제마, 하메스로 이뤄진 공격 라인을 들고 나왔다.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의 고민은 '나폴리의 높은 수비 라인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였다. 오른쪽 공격수 자리에 베일이 결장하고, 하메스가 출전하며 바스케스가 벤치에 앉으니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진에는 직접적으로 수비 뒷공간을 노릴만한 빠른 주력을 가진 선수가 없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 형태


그래서 지단이 선택한 전술적 변화가 바로 공격 라인에 유동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진이 BBC라인일 경우, 베일과 마르셀로가 측면을 흔들고 호날두가 좁혀 벤제마와 2톱을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상대의 수비 라인이 매우 높고 오른쪽에 측면을 흔들어줄 공격수가 없자 지단은 호날두, 벤제마, 하메스에게 모두 유연성있는 움직임을 가져갈 것을 요구했다. 

호날두는 중앙과 측면을 겸했다. 측면에서 호날두 없이 공격이 전개되면 중앙으로 좁혀 원래 자신이 맡았던 골잡이 역할을 해줬고, 상대 수비수와의 라인 브레이킹 싸움에서 밀리거나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 상황, 그리고 수비 진영에서의 빌드업 상황에서는 측면으로 빠져 볼을 받아주고 운반해줬다. 때문에 호날두의 히트맵은 중앙과 측면에 걸쳐 모두 골고루 분포되었지만, 그가 직접적으로 볼에 영향을 미친 곳은 측면이었다. 여기다가 경기 중 하메스와 몇번의 스위칭을 거쳐 왼쪽/오른쪽을 가리지 않고 활약했다.

벤제마는 최전방 스트라이커 자리에만 머물러있지 않고 밑선으로 계속 내려오거나 측면으로 빠져 팀의 공격 전개에 도움을 줬다. 그가 밑선/최전방으로 빠져야지 비로소 앞서 소개한 '호날두가 관여하지 않는 공격 전개'상황이 펼쳐져 호날두가 중앙에서 골잡이 역할을 맡아줄 수 있다. 반대로 호날두가 측면으로 빠질 때는 벤제마가 골잡이 역할을 맡았다. 이렇듯 레알 마드리드가 호날두 아니면 벤제마 둘 중 하나가 밑선으로 내려와야지 정상적인 공격 전개를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나폴리의 수비 라인이 매우 높아 이들의 공격 공간이 제한됐기 때문이었다. 

하메스는 본래 측면으로 빠져 기존 베일/바스케스가 맡았던 수비 라인의 간격을 벌려주는 역할을 맡되, 그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종종 중앙으로 좁혀 들어와 팀의 공격 전개에 많은 관여를 했다. 물론 측면으로 벌려준 만큼 빠른 주력의 힘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볼 소유와 공격의 연결 고리 역할 만큼은 수준급이었다. 그의 히트맵은 주로 오른쪽 측면에 몰려있지만, 그것에 비해 중앙 지역에서 많은 볼에 대한 관여를 했다.



레알 마드리드 공격 라인의 이번 경기 히트맵 (C)squawka.com



크로스, 모드리치의 역할과 이들의 롱 패스맵 (c)squawka.com


공격 라인에는 유동성을 부여한 한편 미드필더진에겐 여전히 조직적으로 움직일 것을 요구했다. 어느 때나 다름없이 카세미루는 수비 라인 앞을 커버했고, 크로스와 모드리치는 수비 라인과 공격 라인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특별히 유별난 점이 있었다면 이들의 긴 횡 패스 의존도가 높았다는것, 그리고 방향 전환의 패스가 빛났다는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나폴리의 매우 높은 수비 라인을 공략하기 위해 좁은 공간에서 수비 뒷공간으로 찔러주는 종 패스가 아닌, 넓게 벌려선 하메스와 마르셀로를 이용한 횡패스를 선택했다. 공격을 전개할 때 볼이 왼쪽에 있으면 넓게 벌려선 오른쪽으로, 반대로 오른쪽에 있으면 넓게 벌려선 왼쪽으로 횡패스를 뿌렸다. 이는 크로스와 모드리치의 롱 패스 미스 숫자가 하나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까닭은 지단 감독이 의도했던 전술들로 골이 성공됐기 때문이었다. 크로스, 모드리치의 방향 전환 패스로 인한 득점은 레알 마드리드의 첫 번째 골 장면에서, 호날두의 측면 위치에 대한 득점은 두 번째 골 장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여기다가 이번 경기에서 들고 나온 강한 전방 압박 역시 카세미루의 원더골에 관여를 했으니. 감독이 의도한 모든 전술들이 득점으로 연결된 것이다. 


세계 최고의 팀 레알 마드리드는 과연 산 파울로 스타디움에서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을 이뤄낼 수 있을까? 세계 최고의 팀과 싸우는 나폴리는 과연 2차전에서 어떤 전술을 준비할까? 이들의 알 수 없는 운명을 판가름하는 날은 계속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