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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튼-맨시티 분석] '수비 불안' 맨시티를 침몰시킨 쿠만의 전술
병장 서현규 | 2017-01-16 21:56:26 | 1189


(c)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과르디올라는 전체 훈련의 80%를 수비에 투자하는 감독이다. 그가 전 세계의 좌익 축구를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감독 중 하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모순적인 사실이다. 그는 높은 수비 라인이 낮은 수비 라인보다 더욱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감독이다. 수비 라인이 우리 편 골문과의 거리가 더욱 멀기 때문에. 지난 15-16 시즌 리그 17실점이라는 역대 최소 실점으로 분데스리가를 석권했다는 사실이 그의 수비 이론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런데 그런 과르디올라가 4-0이라는 매우 절망적인 스코어로 패배했다. 상대는 옛 동료였던 로날드 쿠만 감독. 그의 역대 커리어 중에서 3번째, 그리고 리그에서는 처음으로 겪어보는 스코어다.  

어떻게 쿠만 감독은, 과르디올라를 상대로 4골을 득점할 수 있었을까?

-백3의 에버튼, 그리고 불안했던 맨시티



이번 경기 양팀 선발 라인업


맨시티를 상대하는 쿠만 감독의 선택은 백3였다. 지난 리그에서 16번의 백4를, 4번의 백3를 기용해왔던 에버튼이기에 사실 맨시티를 상대로 백3를 들고 나오는 것은 도박과 같은 선택이었다. 거기다가 아직 유망주 수식어를 달고 있는 톰 데이비스와 메이슨 홀게이트의 선발 출전이라니. 아직 명성이 확실하지 않은 이 둘을 끼고 백3를 가동한다는 것은 자칫하면 에버튼이 대패를 당할 수 있는 결정적인 모험수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반면 맨시티는 귄도간의 부상과 페르난지뉴의 징계, 거기다가 페르난두의 출전 불확실성으로 오른쪽 윙백의 파블로 사발레타를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했다. 그 외에는 모두 맨시티의 1군급 전력을 갖춘 선수들이었다. 

-쿠만 감독이 백3를 들고 나온 이유

에버튼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백3임에도 불구하고 쿠만 감독이 이번 경기에서 중앙 수비수를 3명이나 배치시킨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맨시티를 상대로 효과적인 전방 압박을 펼치기 위해서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맨시티의 중원을 압도하기 위해서였다.



에버튼의 중원 수비 장면


이날 에버튼은 바클리의 위치에따라 3-5-2와 3-4-3포메이션을 혼용해나갔는데, 그 혼용의 기준점이 되는 상황이 바로 에버튼의 전방 압박 시점이었다.

맨시티가 수비진영에서부터 빌드업을 시작해 나갈 때 바클리는 이를 압박하기 위해 전방으로 이동한다. 동시에 에버튼은 3-4-3 전형이 되면서 맨시티를 수비하게 된다. 이때 맨시티의 야야 투레는 수비진영의 원활한 빌드업 진행을 위해 두 명의 센터백 사이로 내려가게 되는데, 그럴경우 중원에는 사발레타 혼자밖에 남지 않게 된다. 때문에 활동량이 왕성하고 볼을 잘 간수할 줄 아는 공격 2선의 실바와 데 브루잉이 3선으로 내려와 빌드업을 도와야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쿠만 감독은 백3를 들고 나온 것이다.

데 브루잉과 실바가 3선으로 내려와 등을 지고(맨시티편 골대를 바라보면서, 또는 에버튼 골대를 향해 등을 지며) 수비진에서 넘어오는 볼을 받을 때 중원의 배리와 데이비스가 이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리고 배리와 데이비스가 이들을 수비하는 동안 바클리는 다시 중원으로 내려와 3-5-2 포메이션으로 바뀌는 것이다. 



투레와 사발레타의 이번 경기 패스맵 (c)squawka.com


에버튼의 이러한 전략이 먹혀들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발레타가 생각 이하로 중원에서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위 패스맵만 봐도 사발레타가 투레에 비해서 얼마나 중원 장악력이 약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중원의 한 선수가 영향력을 크게 발휘하지 못하니 공격 2선의 두 선수 모두가 3선으로 내려와야 했고, 결국 최전방에는 스털링과 아구에로만이 남아 맨시티의 공격을 이끌어가야 했다. 만약 사발레타 대신 전문 중앙 미드필더가 선발 출전했더라면 맨시티의 최전방 공격은 2명에서가 아닌 3명에서 이끌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대체적으로 백3는 백4에 비해서 중원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크게 가져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들의 윙백이 한쪽 측면을 모두 커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쿠만 감독은 중원 3명의 선수 중 한 명인 바클리를 전방 압박에 가담시킬 수 있었고, 데이비스와 배리를 상대 선수(데 브루잉, 실바)에게 강하게 압박하도록 주문할 수 있었다. 에버튼의 중원에게 이러한 임무를 부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 뒤 3명의 센터백이 후방을 든든히 지켜주기 때문이었다.  


(영상 참조 : http://tvcast.naver.com/v/1377572)


쿠만 감독의 이러한 전략은 생각 외로 매우 큰 이점을 가져다줬다. 에버튼의 선제골 장면과 2번째 골 장면의 시발점을 봐보자. 선제골 장면에서는 스톤즈가 실바에게 연결하는 패스를 데이비스가, 2번째 골 장면에서는 투레가 앞선으로 짧게 연결하는 패스를 배리가 끊어내면서 에버튼 공격의 시발점을 만들어 냈다. 여기서 최전방의 루카쿠와 미랄라스의 빠른 발을 이용하여 높게 전진된 맨시티의 수비 라인을 공략하니 2골을 성공적으로 뽑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쿠만 감독이 맨시티를 상대로 백3를 꺼내든 이유는 맨시티의 중원 선수들이 대거 결장했기 때문이었다. 앞서 소개했듯 페르난지뉴와 귄도간은 결장이 확정된 상황이고, 페르난두는 출장이 불확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맨시티를 상대로 백3를 꺼내듦으로써 중원을 압도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에버튼의 2골에 모두 직접적인 관여를 하면서 쿠만의 노림수가 완벽히 적중했다고 할 수 있었다. 


-강하게 수비하고, 빠르게 연결한다.


에버튼의 이번 경기 스타일은 명확했다. 수비 진영에서 강하게 수비하고, 전방으로 빠르게 연결하는 것이었다.

에버튼의 이번 경기 수비 장면


맨시티가 공격 2선 선수들의 주도 하에 의해 공격 상황으로 접어들면 에버튼은 위 장면과 같이 수비했다. 수비 라인을 조금 높게 설정함으로써 맨시티의 패스 진영을 강하게 압박하고, 중원 3-4명의 선수들이 후방이나 미들라인에서 볼을 공유하는 맨시티 공격진을 상대로 볼을 따내는 역할을 맡았었다. 이들이 앞선에서 적극적으로 볼을 따내는 역할을 맡은 이유는 맨시티의 미드필더들이 발 빠른 공격수들에게 에버튼의 수비 뒷공간을 노리기 위한 패스를 공급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기본적으로 높은 수비 라인을 유지하며, 이 뒷공간을 노리는 패스를 적극적으로 끊어내야 하기 때문에 에버튼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많은 파울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번 경기 에버튼의 수비진이 정말 잘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다. 파울로 맨시티의 공격과 흐름을 끊어내되, 세트피스나 직접 프리킥 공격에서 실점을 하지 않는 것. 물론 경기 내내 맨시티가 에버튼의 수비 뒷공간을 날카롭게 노리는 장면이나 에버튼 유망주들(데이비스, 홀게이트)의 몇몇 실책으로 치명적인 위치에서 프리킥 기회를 내준 장면들도 적지 않았지만, 에버튼이 이러한 상황에서 수비를 잘 해냄으로써 실점을 면할 수 있었다.



이번 경기 에버튼의 태클맵과 파울맵 (c)squawka.com


이날 에버튼은 총 48번의 태클 시도를, 그리고 17번의 파울을 범했다. 매우 공격적인 수비를 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좌표다. 또한 위 태클/파울맵에서 빨간색 박스로 표시한 곳은 에버튼의 수비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 사이의 공간, 즉 미드필더들이 전방의 발 빠른 공격수들에게 에버튼의 수비 뒷공간을 노릴 수 있는 패스를 넣어주는 위치이고, 보라색 박스로 표시한 곳은 앞서 소개했던 데이비스와 배리가 맨시티 공격 2선을 상대로 적극적인 압박을 가했던 공간을 말한다. 에버튼은 이 두 공간을 효과적으로 수비해내면서 맨시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이번 경기 루카쿠와 미랄라스에게 배급된 패스 루트 (c)포포투 스탯존


에버튼이 이러한 공격적인 수비로 볼을 탈취해내는데 성공했다면 그들의 목표는 최전방의 루카쿠와 미랄라스에게 볼을 최대한 빠르게 연결하는 것이 된다. 루카쿠와 미랄라스 모두 빠른 주력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다. 때문에 이들은 매우 높게 설정된 맨시티의 수비 라인을 공략하기에 매우 유용한 공격수들이며, 특히나 루카쿠는 최전방에서 거대한 체구를 이용해 볼을 효과적으로 지켜내기도 하였다. 

이날 경기의 액션 존, 그러니까 볼이 머물렀던 전체적인 위치가 에버튼 진영에서 36%, 중원에서 39%, 맨시티 진영에서 25%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경기가 얼마나 에버튼의 의도대로 흘러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보통의 축구 경기들은 중원에서 43~50% 정도를 보내는 것이 일반적임. 때문에 이날 경기의 39%가 중원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에버튼의 의도대로 - 수비진에서 루카쿠와 미랄라스에게 한 번에 연결되는, 그리고 백3를 들고 나옴으로써 맨시티의 중원을 죽여버리는 - 경기가 진행됐다는 것을 의미) 그리고 에버튼의 이러한 빠른 공격을 상대로 원정팀 수비진의 불안요소까지 겹치니 맨시티는 이번 경기에서 완전히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또 폭풍 같았던 프리미어리그의 한 주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번 시즌 모두 우승 후보팀으로 평가받았던 현 프리미어리그의 TOP6팀들 중 3팀이 이번 라운드에서 승점 3점을 따내는데 실패하였다. 챔피언 자리의 윤곽은 서서히 보이는듯하지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순위의 최종 결과는 더욱 희미해졌다. 정말 한 끗 차이로 가고 있다.

이번 시즌 마지막에 그들의 최소 목표를 이룰 4팀은 어느 팀일까? 'EPL 판 춘추 전국 시대'에서 미소를 짓지 못하는 감독은 누가 될까? 어느덧 리그는 중후반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