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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의 유럽축구이야기

현대축구에 전진 패스가 중요한 이유
병장 서현규 | 2017-01-13 19:00:10 | 1130


(c)berbol.co.id


현대축구는 압박과 스피드의 싸움이다. 압박을 잘하면 빠른 시간 내에 볼을 되찾아올 수 있고, 볼을 되찾아오면 볼 점유율을 늘릴 수 있다. 그리고 볼 점유율을 늘리면 경기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것이 현대축구의 최근 흐름이자 경기의 양상이다. 

압박과 스피드가 중요해지니 선수들 간의 간격은 더 좁아졌다. 팀 전체와 각 선수 개인의 스프린트 수치도 매우 중요해졌다. 때문에 수비를 하는 팀은 공격팀에게 더욱 좁은 공간만을 허용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일정한 부분은 허용해줘도 괜찮은 공간은 내주고, 상대적으로 실점 위험성이 큰 공간은 밀집된 수비진들로 틀어막았다. 압박과 선수 간격, 그리고 10명의 필드 플레이어만으로 모든 수비 공간을 커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생겨난 수비 방식이다.

이러한 밀집된 수비진을 상대로 상대의 라스트 30m 지점부터 공격을 전개하는 과정을 우리는 '페너트레이션'이라 한다. 이 페너트레이션을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측면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수비 간격 넓히기, 수비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 사이의 1.5선 공간을 활용하기, 후방에서의 중거리 슛, 수비진 뒷공간을 노리는 패스, 중앙에서의 컴비네이션 플레이 등등등... 

하지만 필자는 이 페너트레이션 과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보다도 '전진 패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대로 현대축구에서는 선수 간격이 매우 좁아진 동시에, 공격을 진행할 공간이 왜소해져 페너트레이션 과정에서 전진 패스를 넣기가 매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스피드와 빠른 공/수 전환 역시 옛날에 비해서 매우 발전됐기 때문에 혹여나 전진 패스를 커팅 당할 경우 상대에게 치명적인 역습 찬스를 내줄 수도 있게 된다. 

-전진 패스에 능한 미드필더의 이점과 조합

그라운드 위에서 어느 한 선수의 전진 패스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크게 4가지의 요소를 보면 된다. ▲ 전방의 선수에게 배급할 수 있는 패스길을 얼마나 볼 수 있는가 ▲ 언제 어느 위치에서든,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위치로 패스를 할 수 있는가 ▲  볼을 소유하고 있는 상태로 얼마 만에 또 다른 패스길을 만들어내는가 ▲ 선수가 생각한 패스길이 얼마나 수비수들이 예측 못할만한 창의적인 루트인가

우리는 이 4가지 조건을 모두 뛰어나게 충족하는 선수들을 흔히 '패스의 스페셜리스트', 혹은 '팀의 패서'로 지정하곤 한다. 그 대표적인 선수들로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마이클 캐릭, 사비 알론소, 세스크 파브레가스 등을 말할 수 있다.  



파브레가스의 후방 위치 장면


이러한 패스의 스페셜리스트들이 페너트레이션 과정에서 얻게 되는 최대 이점은 수비적인 위치를 선점하면서 공격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 글에서 말하는 전진 패스는 바로 앞에 있는 선수에게 건네주는 2~3m짜리 패스가 아니라 최소한 6~7m 이상 되는, 공격에 큰 공헌이 되는 패스를 말하는 것이다. 때문에 페너트레이션 과정에서의 패서들은 자연스레 공격 진영의 후방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미 전 세계적인 패스의 스페셜리스트들을 보면서 이들이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는 만능 미드필더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왔다. 이들이 팀의 패서가 될 수는 있지만, 수비의 스페셜리스트까지 되기는 매우 힘들다. 때문에 이들이 페너트레이션 과정에서 공격 진영의 후방 - 어쩌면 상대 역습의 1차 저지선이자 수비 라인 바로 앞을 커버하게 될 수도 있는 매우 막중한 수비적 지역 - 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수비팀이 역습을 할 수 있는 공격팀의 결점이 되기도 한다. 이 지역에서 상대에게 역습을 허용하게된다면, 역습팀의 선두 라인과 공격팀의 수비 라인이 바로 맞붙는 상황이 펼쳐져 실점으로 연결될 치명적인 장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니에스타의 후방 위치 장면


그래서 패스의 스페셜리스트들의 단점(수비적으로 막중한 위치에서 최고의 수비 능력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이들 옆에는 수비적으로 뛰어난 또 다른 미드필더나 활동량이 매우 뛰어난 선수들이 필요했다. 파브레가스 옆에는 지난 시즌 리그 내에서 태클, 인터셉트 부분 1위를 차지했던 캉테가있고, 이니에스타 옆에는 현존하는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부스케츠가 있지 않는가? 캐릭과 알론소 옆에도 활동량이 매우 뛰어난 에레라와 포그바, 그리고 비달이 있다.

상대의 역습시, 팀의 패서들은 비교적 후방에 있다는 위치적 이점을 이용해 이들의 공격 템포를 늦춰주면 된다. 그들의 조력자이자 패서의 최대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또 다른 미드필더들이 상대 역습을 저지할 수 있는 일정한 지역 내로 들어올 시간만 벌어주면 된다. 활동량이 왕성한 미드필더들이 그 지역 내로 들어오게 된다면 이들이 상대 역습을 끊거나 저지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공격  수비 전환 과정'이 진행되어야지 수비적으로 취약한 패서를 막중한 지역에 배치시켜도 상대 역습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횡패스가 아닌 전진 패스를 넣는 효과



에레라의 미들스브로전 패스맵과 캐릭의 크리스탈 팰리스전 패스맵 (c)squawka.com


패스에 강한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똑같은 상황에서 강한 선수는 전진 패스를 넣고 약한 선수는 횡패스를 돌린다는 점이다. 위 에레라의 미들스브로전 패스맵과 캐릭의 크리스탈 팰리스전 패스맵을 참고해보자.

캐릭은 앞서 소개했듯 페너트레이션 시 공격 진영의 가장 후방에 위치하여 전진 패스를 공급해줌과 동시에 전체적인 홀딩 역할을 맡은 미드필더다. 그리고 에레라는 캐릭만큼의 패스 실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경기장 전체를 뛰어다니며 공격의 연결 고리 역할을 맡은 선수다. 에레라는 캐릭의 활동량과 수비적인 측면을, 캐릭은 에레라의 패스적인 측면을 서로 커버해줌으로써 맨유가 최근 9연승을 달성할 수 있었다.



패스에 능하지 않은 미드필더가 중원에서 볼을 뿌릴 때 <그림 A>



패스에 능한 미드필더가 중원에서 볼을 뿌릴 때 <그림B, C>


자 그렇다면, 만약 중원에 캐릭과 같은 패스에 능한 미드필더가 없다면 무슨 상황이 펼쳐지게 될까? 위 <그림 A>를 참고하며 필자가 앞서 말한 '전진 패스 능력을 알아볼 수 있는 4가지 요소'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미드필더가 볼을 잡고 상대 수비 진영 앞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에게 상대 수비 진영 사이의 선수에게 전진 패스를 할 수 있다는 기대를 걸기에는 힘들 것이다. 때문에 그 사실을 아는 상대 수비 입장에서는 이들 사이로 들어오는, 중앙에서 중앙으로 연결되는 상대의 전진 패스를 그리 위협적인 요소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손쉽게 공격진을 봉쇄할 수 있을 것이고, 수비 진영의 전체적인 공간도 비교적 효율적이게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패스에 매우 능한 미드필더가 똑같은 상황에 들어오게 된다면? 이를 앞에 둔 상대 수비진의 경계 대상 1순위는 당연하게도 자신들의 사이에 있는 공격진에게 연결되는 전진 패스일 것이다. (<그림 B>참고) 때문에 수비 간격을 좁혀 패스에 능한 미드필더가 볼 수 있는 패스 루트를 최대한 차단한다. 수비진영이 이러한 형태를 취한다면 비교적 측면 지역을 상대에게 내줄 수밖에 없을 것이며, 측면 공간이 열린다면 윙백들이 높은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는 그들의 오버래핑 루트가 형성될 것이다. (<그림 C> 참고)

결과적으로, 패스에 능한 미드필더가 중원에서 볼을 잡는다는 것은 중앙과 측면에서의 공격 활로를 열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반대로 이러한 선수를 상대로 일정한 수비 간격을 유지해내며 패스 루트를 차단하는 팀이 진짜 수비를 잘하는 팀이라 할 수 있겠다. 

-미드필더 뿐만이 아닌 윙어들까지도 전진 패스가 중요한 시대

현대축구에서는 윙백들의 오버래핑 역시 매우 중요해졌다. 수비 능력뿐만이 아닌 공격 능력까지 그들의 매우 큰 평가 항목이 된 것이다. 백3 체제의 빅터 모제스와 마메 비람 디우프, 그리고 백4 체제 맨유의 안토니오 발렌시아 등 윙어들이 윙백으로 포지션 변경을 한 사례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윙백들의 공격 능력 중요화에 맞물려 윙어들의 역할도 옛날과 많이 바뀌게 되었다. 클래식 윙어 대신 반댓발의 인사이드 포워드/인사이드 커터 유형의 윙어들이 유행하면서 측면 공격수들의 위치가 더욱 중앙 지향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하프 스페이스 안에서 윙어들의 전진 패스 루트


그래서 윙어들에게도 전진 패스의 임무가 막중하게 변한 것이다. 윙백들의 높은 오버래핑에 의해서 윙어들의 주 활동지가 하프 스페이스(위 그림에서 검은색으로 표시된 공간)로 바뀌게 되었는데, 이 하프 스페이스는 전방의 측면과 중앙 모두로 패스를 연결할 수 있는 공격의 핵심 지역이었다.

윙어들이 하프 스페이스에서 질 좋은 패스를 공급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반댓발 윙어'라는 사실이다. 만약 반댓발 윙어가 아닌 그 측면에 맞는 주발 선수가 이 공간에 들어섰다면 그는 측면에서 상대 페널티 박스 가운데로 올려줄 수 있는 크로스의 공격 루트밖에 선택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반댓발 윙어가 이 자리에 들어설 경우, 그 선수는 드리블을 통한 직접 돌파와 중거리 슛, 또는 전방에 위치한 선수에게 전진 패스를 할 수 있다는 여러 가지 공격적 선택권을 손에 쥐게 된다.



메시의 베티스전, 오사수나전 패스맵 (c)squawka.com


그리고 측면에서 중앙으로 들어오며 패스를 가장 잘 하는 윙어가 바로 현존하는 최고의 공격수 리오넬 메시이다. 그는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고 뛴다. 레알 베티스전에서는 주로 오른쪽 측면에 집중하여 중앙으로 넘어오는 전진 패스를 넣어줬다면, 오사수나전에서는 대부분을 중앙 지역에서 전방으로 연결되는 패스를 시도했다. 메시는 이번 시즌 리그에서 총 28번의 키패스를 성공시켰다. 그가 패스를 넣어줄 때면 네이마르와 수아레즈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날카로운 골을 노렸다. 


현대축구는 계속해서 바뀐다. 어쩔 때는 각광받지 못하고 버림받았던 것만 같았던 시스템이 다시 살아나 돌풍을 일으키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영원히 무적일 것만 같았던 전술이 한순간에 몰락해버리기도 한다. 진화와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시간 안에 말이다.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압박? 패스? 수비? 그 답은 어느 누구도 모르지만, 각 팀만의 답을 확립해나가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