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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의 유럽축구이야기

[레알-뮌헨] 판정과 정신력이 가른 명장들의 전술싸움
병장 서현규 | 2017-04-20 05:46:44 | 1324





축구에서 전술이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감독들의 역량을 평가할 때도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경기에 없어서는 절대 안될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어젯밤 펼쳐진 레알 마드리드와 바이에른 뮌헨 간의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경기는 정말 대단했다. 양 감독들이 끊임없는 전술 싸움을 주고받으며 경기를 이끌어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축구에서는 '전술'만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체력과 정신력 싸움으로 번져가는 연장전, 감독들이 걷잡을 수 없는 오심과 선수 퇴장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어제 경기에서 나왔다. 안첼로티 감독이 경기 후 인터뷰에서 심판 판정에 대해 불만을 제기할 만큼 뮌헨 쪽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지단이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도 연장전에서 120%의 집중력을 발휘할 만큼 정말 잘 싸웠다. 하지만 오심이 없었다면, 그리고 뮌헨이 90분 이후 정신력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면 경기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베일 결장 레알과 훔멜스 도박 뮌헨




이번 경기 양팀 선발 라인업


레알 마드리드는 한정된 자원 속 최대한을, 바이에른 뮌헨은 도박을 택했다.

센터백 페페와 바란이 부상당했다는 사실은 지난 1차전과 변함없었다. 때문에 이번 경기에서도 레알의 후보 명단에는 중앙 수비수를 찾아볼 수 없었는데, 여기에 더해 이번 2차전에서는 베일까지 부상으로 결장하게 됐다. 그 대체자로 낙점된 선수가 바로 지난 히혼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이스코였다.  

반면 뮌헨은 지난 1차전과 비교해볼 때 레반도프스키가 복귀했지만, 센터백 하비 마르티네즈가 지난주 퇴장을 당하면서 주전으로 설 수 있는 전문 중앙 수비수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때문에 많은 팬들과 전문가들은 알라바가 센터백으로 옮기고, 베르나트가 왼쪽 윙백으로 나오는 라인업을 예상했지만 안첼로티의 선택은 훔멜스 강제 출전이었다. 그만큼 이번 경기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분명 훔멜스의 진통제로 인한 강제 출전이 연장전 정신 싸움의 큰 패착이 되었을 것이다.   

-전반전 레알의 공격 진영과 이스코 수비 딜레마. 



전반전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 진영과 형태


지난 11월 마드리드 더비 원정에서 3-0승리를 거둘 때도 그랬지만, 지단은 이스코를 활용할 때 매우 자유로운 역할을 부여한다. 비교적 조직적인 롤을 수행하는 베일 대신 그가 들어올 경우 팀 자체가 유기적으로 변화한다. 이번 경기에서도 그랬다. 4-3-3의 오른쪽 공격수 자리에 출전한 이스코는 사실상 프리롤이었으며, 그에 따라 호날두와 벤제마가 2톱을 이루는 빈도가 매우 높아졌다.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 컨셉은 지난 1차전과 비슷했다. 박스 안 공격 라인에게 양질의 패스와 크로스를 공급하는 것. 다만 차이점이라면 1차전에서는 '박스 안 공격 라인'선수에 베일이 포함되어있었지만, 2차전에서는 그를 대신하여 프리롤 이스코가 출전했기 때문에 박스 안 공격수는 호날두와 벤제마밖에 해당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벤제마가 중앙과 오른쪽을, 그리고 호날두가 왼쪽, 오른쪽, 중앙 모두 폭넓게 활동하며 레알의 공격을 이끌었다. 그리고 크로스가 지난 1차전에 비해 공격시 매우 높은 위치까지 올라섰기 때문에 왼쪽 측면은 마르셀로와 크로스가 고정적으로 맡을 수 있었다. 오른쪽은 모드리치와 카르바할이 맡았고, 이스코는 프리롤을 부여받아 양쪽 모두 활발하게 가담하였다.



이스코의 이번 경기 히트맵 (c)squawka.com


전반전 레알 마드리드는 선제골을 최대한 성공시키기 위해 열심히 움직였다. 이들의 공격시 평균 포메이션은 이스코가 중앙에 위치한 4-3-1-2였다. 안첼로티 역시 이번 경기 베일 대신 이스코가 출전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지단이 이스코를 중앙으로 좁혀 활용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그 점을 이용하기 위해 그만의 공격 대형을 갖고 나왔다. 



뮌헨의 전반전 공격 진영과 형태


뮌헨의 공격 진영과 형태는 위와 같았다. 알론소가 중심이 되는 라볼피아나를 이용해 람과 알라바가 높은 위치까지 전진했으며, 알칸타라가 지난 1차전에 비해 조금 낮은 위치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뮌헨의 주 공격 루트인 알라바 롤(공격시 알라바를 높은 윙어 위치에 두는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리베리를 하프 스페이스 공간에 배치했으며, 오른쪽 로벤은 늘 그랬듯 넓은 측면으로 벌려줬다


핵심은 하프 스페이스 공간에 위치한 리베리가 중앙과 왼쪽 측면을 활발하게 오가는 것, 그리고 알칸타라가 좌우로 광범위하게 움직여주는 것과 로벤과 알라바가 경기장을 폭넓게 사용하는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공/수 전환시 문제점(좌)과 수비 단계에서의 문제점(우)


전술했듯 레알 마드리드가 공격시 평균적으로 4-3-1-2 포메이션을 사용하였으니 이들의 공수 전환 단계에서 문제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바로 넓게 벌린 알라바와 로벤을 일정 수준 이상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 4명의 미드필더를 좁게 놓은 4-3-1-2 포메이션 특성상 측면의 로벤과 알라바를 제어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에 더해 람과 리베리가 포지셔닝 적으로 이들을 충분히 지원해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안첼로티가 지난 1차전과 다르게 알론소에게 라볼피아나 롤을 부여한 것이었다. (알론소의 라볼피아나로 람까지 높은 위치로 전진할 수 있기 때문. 이로 인해 뮌헨은 좌/우 공격에 각각 2명의 선수를 투입할 수 있었다.) 

'공  수 전환 단계'가 아닌 일반 수비 단계에서는 4-4-2 수비 진영을 구축했다. '이스코-크로스-카세미루-모드리치'로 이어지는 미드필더 라인이 수비 라인 앞을 커버했다. 여기서 생긴 문제는 뮌헨이 로벤과 알라바에게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트 롤을 부여했다는 점과, 양 미드필더 자리에 배치된 이스코와 모드리치가 중앙 지향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는 점이다. 전술했듯 하프 스페이스의 리베리는 언제든지 중앙으로 좁힐 수 있었고, 알칸타라는 좌우로 폭넓게 활동했다. 때문에 뮌헨은 공격시 중앙에 알론소, 알칸타라, 비달, 리베리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진영을 형성할 수 있었으며,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양쪽의 이스코와 모드리치가 좁힌다면 자연스레 넓게 벌린 로벤과 알라바에게는 광활한 공간이 창출됐다.

뮌헨은 넓게 벌린 알라바와 로벤을 최대한 활용하여 레알의 수비를 계속 흔들었다. 그들의 중원에는 패스 마스터 알론소와 알칸타라가 있었다. 때문에 뮌헨은 120분에 걸쳐 올린 총 32번의 크로스 중 15개를 전반 45분 만에 성공시킬 수 있었다. 좌우 크로스 플레이를 통해 박스 안 레반도프스키의 영향력을 이용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뮌헨은 결코 크로스만으로 레알의 골문을 흔들 수 없었다. 특히나 전반 15번의 크로스 중 6개를 올린 알라바는 크로스를 통해 아무런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번 경기 리베리와 알칸타라의 히트맵 (c)squawka.com


-후반전. 레알 마드리드의 골문을 열기 위한 안첼로티의 전술 변화와 지단의 대응책


뮌헨의 후반전 공격 진영과 형태


후반전에 돌입한 뮌헨은 더욱 공격적인 전술로 레알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모든 선수들이 전반전보다 더욱 활발하게 볼 주위에 위치할 것을 주문했다. 또한 알론소를 올리고 알칸타라를 내려 '알론소-알칸타라'라인을 수비 라인 앞선에 형성하였으며, 비달을 세컨 스트라이커 자리에 배치함으로써 흡사 지난 1차전에서의 공격 형태와 비슷한 대형을 형성했다.  

알론소와 알칸타라는 후방에서 볼을 뿌리고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세컨 스트라이커 비달은 대부분의 플레이에 관여하지 않되(사실 위치 자체가 전반부터 완전히 고립된 레반도프스키 바로 밑선이라 비달도 팀의 공격 전개에 관여하기 힘들었다.), 박스 안으로 계속 쇄도하며 무언가를 만들어낼려 하였으며, 람은 상황에 따라 중앙으로 좁혀 알론소, 알칸타라와 함께 중원에서 3미드필더 진영을 형성했다. 안첼로티는 비달의 세컨 스트라이커 자리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75분 알론소 대신 뮐러를 교체 투입시켰다. 비달을 알론소 자리로 내리고, 뮐러를 세컨 스트라이커 자리에 배치한 것이다. 

안첼로티의 전술 변화는 2골과 퇴장 모두를 가져다줬다. 로벤이 얻어낸 pk는 '선수들이 전반전보다 더욱 활발하게 볼 주위에 위치할 것'이라는 지침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라모스의 자책골은 뮐러가 세컨 스트라이커 자리에서 가슴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줬기에 존재한 것이었다. 또한 비달의 레드카드 역시 그가 수비 라인 앞을 보호해야 할 알론소 역할을 맡으면서 발생한 장면이었다. 



레알의 후반 수비 진영


이러한 안첼로티의 전술 변화에 맞서 지단 역시 대응책을 꺼내들었다. 레반도프스키의 선재골이 성공된지 10분 후, 벤제마 대신 아센시오를 투입함으로써 수비 라인을 더욱 두텁게 한 것. 기존 4-4-2대형에서 아센시오를 왼쪽에, 이스코를 오른쪽으로 옮긴 4-5-1진영으로 전환했다. 여기서 역습시 큰 화력을 낼 수 있는 선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스코 대신 매우 직선적인 바스케스를 투입시켰다. 

이러한 전술 변화를 거듭하면서 박스 안 메인 타겟터는 호날두 혼자가 됐다. 이는 곧 지단이 수비를 두텁게 하는 동시에, 호날두의 능력에 더욱 의존한다는 것을 뜻했다.(박스 안 메인 타겟터를 벤제마, 호날두 2인 체제에서 호날두 1인 체제로 갔기 때문에) 그리고 호날두는 박스 안에서 3골(그 중 마지막 골은 마르셀로의 개인 능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을 터뜨리며 지단이 기대에 부응해줬다. 그가 전술적으로 호날두의 능력에 의존했다는 사실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준 것이다. 만약 호날두가 득점하지 못했다면 이 경기는 지단의 전술적 패배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렇게 한때는 사제지간이었지만 지금은 세계적 명장이 되어버린 지단과 안첼로티의 치열한 머리싸움은 오심으로 얼룩지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훔멜스의 진통제 강제 출전과, 베르나베우 홈 이점이 불러온 연장전 정신/체력 싸움 승리가 레알을 4강으로 인도해줬다고도 할 수 있었다. 레알과 뮌헨, 지단과 안첼로티 모두가 잘 싸워준 명경기였다.

강적 뮌헨을 꺾고 올라간 지단의 레알은 이번 시즌에도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을까? 이번 8강전 승리는, 지단이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한번 더 증명해주는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