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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첼시] '유효 슈팅 0개', 첼시를 집어삼킨 위대한 무리뉴의 변칙 전술
병장 서현규 | 2017-04-17 23:00:36 | 1876



무리뉴는 위대한 감독이다. 지도자로서의 커리어를 되돌아본다면 역사에 길이 남을 남자다. 그런 감독이 세계 최고의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지휘봉을 잡았으니 모든 팬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번 시즌 리그 5위를 기록하고 있는 무리뉴의 맨유에게 많은 실망과 우려가 보내지고 있는 것이다.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에는 거뜬히 들어갈 줄 알았던 이들이, 최다 무승부를 기록하며 리그 5위에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무리뉴가 왜 '위대한'감독인지 우리는 어젯밤에 또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리그 1위 첼시를 홈으로 불러들여 2-0 승리를 거둔 것. 그들은 이번 시즌 리그에서 첼시에게 5번째 패배를 안긴 팀이 됐다. 이날 홈팀은 매우 탄탄했고, 상대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어떻게 무리뉴는 무적일 것만 같았던 콩테의 백3를 질식시킬 수 있었을까? 

-다시 등장한 무리뉴의 4-4-2



맨유의 이번 경기 선발 라인업


무리뉴의 4-4-2가 이번 경기에서 다시 돌아왔다. 맨유는 지난 10월에 펼쳐진 리버풀전에서 이 포메이션을 기용한 전례가 있다. 즐라탄이 선발에 빠지고 린가드와 래쉬포드가 투톱으로 출전했다. 영과 발렌시아가 양 측면 미드필더로 나섰고, 포그바와 펠라이니가 중원을 지켰다. 그리고 '다르미안-로호-바이-에레라'라인이 백4를 형성했다.

무리뉴가 정말로 대단한 이유는, 유로파리그 대비 주전 선수들을 쉬게 하며 이번 시즌 1군으로 자리 잡지 못한 자원들을 전술적으로 120% 활용했다는 것이다. 후술 하겠지만 첼시의 대응 전술에 대하여 적재적소의 자원들을 4-4-2 포메이션 안에 조합시켰다. 

-첼시가 '유효슈팅 0개'를 기록한 이유


맨유의 이번 경기 수비 진영과 원리


맨유가 4-4-2를 들고 나온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첼시의 기초 빌드업 단계에서 그들의 공격 라인을 봉쇄하기 위함이었다. 무리뉴 스스로도 인정했듯, 이번 첼시전 핵심 포인트는 아자르, 코스타, 페드로를 얼마나 잘 묶어놓느냐였다. 때문에 4-4-2 포메이션을 들고 나온 것인데, 첼시의 밑선 빌드업 단계에서부터 강한 전방 압박을 가하는 것이 아닌, 4-4-2 진영을 형성한 채 전진하여 공격 라인에게 배급될 패스 루트를 맨유의 미드필더 라인이 차단해내는 방식으로 수비를 진행하였다.  

이는 지난 10월 리버풀전에서 들고 나온 전진 수비 메커니즘과 비슷했다. 4-4-2 대형을 형성하여 상대의 기초 빌드업 과정을 방해하는 것. 비록 그 경기에 비해 압박의 강도가 현저히 낮아졌지만, 영과 펠라이니는 그때와 똑같은 포지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즐라탄을 선발에서 제외한 전술적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전진 수비 상태에서 역동성과 활발함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밑의 수비 라인은 첼시의 공격 형태에 맞춰 철저하게 준비했다. '[웨스트 햄-첼시] 첼시의 백3는 계속 진화한다.'에 자세하게 나와있는 내용이지만, 첼시의 3-4-3 포메이션은 기본적으로 중앙 미드필더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빌드업시 공격 라인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내려와 볼을 받아준다. 그리고 이들이 유기적으로 내려올 때 윙백들이 넓게 벌리며 순간적으로 최전방에 침투한다. 



맨유의 철저한 대인 수비 장면


결과적으로, 첼시 공격 라인의 핵심 특성은 '첼시 골문을 바라보며 볼을 받을 때'가 유난히 많다는 것이다. 무리뉴도 이를 알았다. 때문에 4명의 수비 라인 모두에게 매우 짙은 대인 마크 수비를 주문했다. 상대 공격 라인이 첼시 골문을 바라보며 볼을 받을 때, 순간적으로 그들을 밀착 수비하며 공격의 전진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에레라가 아자르를, 로호+바이가 코스타를, 다르미안이 페드로를 맡았다. (이러한 형식의 대인 마크 수비는 지난 첼시와의 FA컵 8강전 경기에서도 사용한 전례가 있었다. 이 당시 무리뉴는 '백6'를 구성하며 상대를 막아냈다.)


잠깐, 여기서 맨유의 양 윙백이 유기적으로 내려가는 아자르-페드로를 마킹한다면,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상대 윙백은 누가 수비할까? 그에 대한 정답은 양 측면 미드필더 자리에 배치된 영과 발렌시아였다. 이들은 이날 경기에서 매우 측면 지향적으로 활동했는데, 무리뉴가 두 선수에게 이러한 주문을 한 이유는 크게 2가지였다. 첫째는 후술할 맨유의 공격 방식 때문이었고, 둘째는 넓게 벌린 채 한쪽 측면을 계속해서 오가는 첼시 윙백을 수비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따라 에레라가 아자르를, 발렌시아가 모제스를 마킹한다면, 아자르가 순간적으로 내려옴에 따라 모제스가 올라갈 때 맨유는 '다르미안-로호-바이-발렌시아'로 이뤄지는 백4 라인(이 수비 라인이 원래 정상적인 구성이다.)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첼시 윙어-윙백의 연쇄적 움직임에 따른 맨유 수비 라인 변화


측면 미드필더가 전술했듯 매우 측면 지향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이날 윙백의 공격 가담은 오버래핑이 아닌 언더래핑 형식으로 이뤄졌다. 바깥쪽으로 돌아 올라가는 것이 아닌 안쪽으로 좁혀오는 것이다. 에레라의 오른쪽 윙백 기용과 언더래핑성 공격 가담. 이는 무리뉴가 지난 에버튼전 후반에 가동시킨 전술이었다. 당시에는 에레라의 언더래핑에 따라 측면으로 벌려주는 역할을 린가드가 맡았다. 



맨유의 양 윙백, 측면 미드필더 히트맵 (c)squawka.com


후에 콩테는 후반전 시작 10분 만에 모제스를 빼고 파브레가스를 교체 투입시킴으로써 팀을 백4로 전환하였다. 맨유의 대인 마크 수비 체제에 혼선을 주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무리뉴가 그에 대한 대응(60분 린가드-캐릭 교체)을 하기 전까지는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환한 파브레가스가 매우 자유로워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접근 방식은 좋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던 공격



무리뉴가 추구한 이번 경기 공격 방식


무리뉴가 추구한 공격은 상대의 측면을 노리는 것이었다. 첼시의 중앙 미드필더 쪽을 집중 공략했던 과르디올라와는 상반된 접근 방식이었다. 맨유가 측면을 우선적으로 공략한 이유는 전술한 발렌시아와 영의 측면 지향적 움직임 때문이었다. 이들은 공격 때든 수비 때든 항상 넓게 벌려있었다. 

양 측면 미드필더들이 항상 넓게 벌려주니 맨유는 효율적인 스윙 플레이가 가능했고, 동시에 이들에게 언제든지 볼을 연결할 수 있었다. 이들이 볼을 잡는다는 것은 곧 상대 윙백을 끌어올 수 있다는 얘기다. 맨유의 측면 미드필더가 볼을 잡을 경우 이를 수비해야 되는 사람은 첼시의 양 윙백이었는데, 윙백이 수비를 위해 앞으로 나올 경우 맨유의 중앙 미드필더(주로 포그바)와 양 공격수들은 유기적으로 측면(첼시의 윙백과 센터백 사이. 그러니까 위 그림처럼 발렌시아가 볼을 잡을 경우에는 래쉬포드/포그바/펠라이니가 모제스와 케이힐 사이 공간으로 침투)으로 이동했다.

이는 첼시 수비시 양 윙어인 아자르와 페드로의 수비 복귀가 늦다는 점을 이용한 공격 방법이었다. 동시에 즐라탄이 아닌 윙어를 겸할 수 있는 래쉬포드와 린가드를 선발 출전시킨 이유, 그리고 발렌시아와 영을 매우 측면 지향적으로 활용한 까닭도 이러한 공격 전술 때문이었다.  



포그바, 펠라이니의 패스맵과 히트맵 (c)squawka.com


하지만 우리는 이번 경기에서 맨유가 성공시킨 2골 모두가 이러한 공격 전술에 의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주심의 성향과 시야에 따라 충분히 에레라의 핸들로 선언될 수 있었던 선제골, 그리고 수비수에 맞고 굴절됐기 때문에 어느 정도 행운이 따랐다고 할 수 있는 추가골까지. 앞서 소개한 수비 전술은 정말 최고였지만, 공격 전술만 놓고 보자면 그리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 

이유로는 중앙 미드필더인 캉테와 마티치가 선보였던 광범위한 수비 범위, 그리고 오른쪽 센터백인 케이힐의 즉각적인 커버링을 들 수 있겠다. 이날 맨유는 헐거운 모제스 쪽을 공략하기 위해 오른쪽으로만 51%의 공격을 전개했는데, 여기서 오른쪽 센터백인 케이힐이 모제스의 뒷공간을 매우 효과적으로 커버해줬다. 만약 케이힐이 왼쪽, 조우마가 오른쪽 수비수였다면 이날 맨유의 골수는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무리뉴가 더욱 대단한 것은, 이 글에서 소개한 모든 첼시 맞춤형 전술들이 전부터 그가 실험해왔던 전략들로 구성됐다는 것이다. 4-4-2 포메이션을 이용한 전진 수비(10월 리버풀전), 에레라의 오른쪽 윙백 기용과 언더래핑(지난 에버튼전), 한 쪽 측면 집중적으로 노리기 (발렌시아를 이용한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트 1차적 과정), 수비 라인에게 짙은 대인 마크 수비 주문하기(지난 첼시와의 FA컵 경기) 등. 절대 이번 첼시전을 준비해서 그가 급조한 전술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번 시즌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2연패를 당한 무리뉴 감독이 드디어 복수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가 거둔 승리는 매우 아름다웠다. 전술적으로, 선수 기용적으로, 경기 외적 스토리적으로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지난 10월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경기가 끝날 때 무리뉴의 양손에는 '4'와 '0' 표시가 있었지만, 이번 올드 트래포드 속 무리뉴의 손가락은 맨유 앰블럼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것이 올 시즌 '맨유-첼시'매치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