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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의 유럽축구이야기

[레스터-세비야] 이유 있는 레스터의 승리와 세비야 패착의 원인
병장 서현규 | 2017-03-16 18:30:06 | 1012

어젯밤 유럽 축구에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주인공은 지난 시즌 최고의 언더독이었던 레스터 시티. 그들이 또 해냈다.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16강 상대는 스페인의 강호, 삼파올리의 세비야였다. 지난 1차전에서 살린 미세한 희망의 불씨가 마침내 어젯밤에 타올랐다.

-오카자키의 귀환과 무너진 세비야



이번 경기 양 팀 선발 라인업


이번 경기 레스터 시티의 선발 라인업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로 가득차 있었다. 지난 2015-2016 시즌 베스트 11중, 첼시로 떠난 캉테를 제외한 10명의 모든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 선발로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번 시즌 많은 기회를 잡지 못했던 오카자키의 선발 투입은 이날 2-0승리를 이끄는데 큰 공헌을 해주었다. 

반면 세비야는 예상과 조금 다르게 나왔다.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예상됐던 스테판 요베티치와 마리아노 페레이라가 빠졌고, 니콜라스 파레하와 벤 이데르가 투입됐다. 삼파올리 감독이 방심한 것이었다. 좋은 경기를 치르지 못한 세비야는 후반전을 맞이하자마자 메르카도와 사라비아대신 마리아노와 요베티치를 투입했다. 늦게라도 경기의 반전을 노려보려 했지만 이들의 실낱같은 희망은 슈마이켈 골키퍼의 신들린 선방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경기 승리의 원동력이 된 레스터 시티의 전방 압박



레스터 시티의 전방 압박 방식(좌)과, 측면 수비 방식(우)


이날 '약체'레스터 시티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까닭은 매우 체계적으로 이뤄진 전방 압박이 실현됐기 때문이었다. 위 왼쪽 그림처럼, 이날도 세비야는 두 센터백과 은종지를 붙인 삼각형 구도를 빌드업 코어로 삼았다. 이곳에서 세비야의 기초 빌드업이 이뤄졌다. 이에 맞서는 레스터 시티는 바디와 오카자키를 매우 앞선까지 내보내며 이 삼각형을 압박하였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레스터 시티 2명의 공격수가 매우 왕성한 활동량을 내세워 세비야 3명의 선수들을 통제했다는 것이다.   



나스리의 1차전, 2차전 히트맵 비교 (c)squawka.com


물론 여기에는 레스터 시티 공격수들의 공헌뿐만이 아니라 빌드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프리롤 나스리의 부재 탓도 있었다. 위 비교 히트맵을 보면 알겠지만, 나스리는 지난 1차전에 비해 이번 2차전에서는 매우 공격 쪽에 주력한 모습을 보여줬다. 세비야 진영에서 그를 많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삼각형의 어려움을 풀어줘야 할 선수는 앞선의 빈센테 이보라가 되겠는데, 그에게는 나스리와 같은 넓은 시야와 볼을 앞선으로 배급할 수 있는 좋은 능력이 없었다. 또한 이보라 역시 기초 빌드업 과정에 그리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이날 기초 빌드업의 코어였던 라미와 파레하, 은종지는 바디와 오카자키의 끈질긴 수비에 좀처럼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앞선으로 안정적이게 볼을 배급하지 못했다. 이들은 불안정한 볼을 공급하거나 롱 볼을 붙였는데, 전방의 세비야 선수진에는 이 공중으로 오는 롱 볼을 받아주고 지켜줄 수 있는 선수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이 이번 경기에 오카자키가 선발로 나선 이유 중 하나이고, 세비야 패착의 첫 번째 원인이 되었다. 

만약 기초 빌드업이 이뤄지는 삼각형에서 볼이 안정적이게 앞선으로 연결된다면, 중원에서의 강도 높은 드링크워터/은디디+오카자키의 압박을 통해 공격이 측면으로 유도되도록 노력했다. 세비야를 측면으로 유도해내거나 그들이 처음부터 사이드로 공격을 전개할 경우, 레스터 시티는 위위 오른쪽 그림과 같이 수비를 행했다. 한쪽 윙백이 압박에 가담하여 후방에 백3를 형성하고, 중앙 미드필더들이 폭넓게 움직여 측면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그렇게 '윙백1 + 중앙 미드필더1,2 + 측면 미드필더1 + 공격수 0,1'로 이뤄지는 측면 3~5인 압박 진영이 형성되었다. 

이와 같은 측면 압박 진영 형성은 레스터 시티에게 2가지 전제 조건이 따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첫째는 수준 높은 간격 유지이다. 이들은 수비 라인 간격, 중앙 미드필더 간의 간격,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수와의 간격 등을 매우 적절하게 조절하며 세비야를 압박해냈다. 세비야는 볼을 매우 잘 다루는 팀이다. 분명 이들의 간격 유지가 잘 되지 않은채 압박을 나섰다면 세비야는 그들 사이의 넓은 공간을 자유롭게 드나들었을 것이다.  

둘째는 최전방 오카자키의 존재이다. 활동량과 태클에 강점이 있는 은디디와 드링크워터가 전폭적인 측면 지원을 위해 횡적으로 폭넓게 활동할 경우, 오카자키가 밑선으로 내려와 비어있는 중원 공간을 커버했다. 오카자키의 전방 수비시 활동 루트는 다음과 같다. '전방 압박(볼이 뒷선으로 연결됨) ▶ 중앙 미드필더 위치와 중원 공간 파악 ▶ 중원 공간 커버 ▶ 중원 수비(수비시) or 상대 진영으로의 쇄도(공격시) or 바디 밑선에서의 볼 소유(공격시) ▶ 전방 압박' 이것이 오카자키 신지가 선발로 나선 두 번째 이유이다. 만약 공격 라인에 그가 없었다면 은디디와 드링크워터는 측면으로 폭넓게 이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카자키와 은디디+드링크워터의 히트맵 (c)squawka.com


레스터 시티의 전체적인 경기 운영 방식은 이러했다. '위와 같이 체계적으로 이뤄진 전방 압박 ▶ 빠른 수비 단계 전환 ▶ 수비진에서 빌드업이 시작될 경우 비교적 빠르게 공격 전개(중앙 수비수들은 매우 소극적으로 참여) ▶ 빠른 페너트레이션 전개 ▶ 전방 압박' 결과적으로 레스터 시티는 전방 압박 이후 공격을 비교적 빠른 템포로 전개하여 위 전방 압박 상황이 다시 찾아오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이번 경기에서 세비야가 자신들의 방식대로 승리를 거둘려면 레스터보다 더욱 빠른 공/수 전환을 가져가야 했다. 그럴 경우 레스터가 '수비  공격 단계'에 들어갈 때 재역습을 노릴 수 있을 것이며, 반대로 상대의 '공격  수비 단계'에서는 역습에 의한 골을 노릴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느린 템포의 공격을 전개하지 못한 까닭도 있다. 

-레스터 골문을 열지 못한 세비야 공격의 문제점 



세비야의 이번 경기 공격 형태. (좌)-전반전, (우)-후반전


세비야의 공격 형태는 위와 같았다. 선수들간의 유기적인 스위칭과 자율적인 위치 선정은 기본 전제로 한다. 다만 전체적인 틀을 보자면 전반전에 비톨로와 에스쿠데로가 왼쪽을, 사라비아와 메르카도가 오른쪽 측면을 맡았다. 그리고 은종지가 수비수 바로 앞을 보호했고, 이보라가 중원을 맡았다. 나스리는 좌우를 계속 옮겨 다니며 프리롤 역할을 수행했다. 이데르도 최전방에서 사이드로 계속 움직였다.

후반전에는 메르카도대신 공격에 더욱 날카로운 마리아노가, 사라비아대신 박스 안에서 힘을 낼 수 있는 요베티치가 투입되었다. 비톨로가 사이드를 바꾸며 마리아노와 오른쪽을 맡았다. 그리고 왼쪽은 에스쿠데로 혼자 맡되, 볼이 오른쪽에 머무를 경우 요베티치는 중앙에, 그리고 왼쪽으로 전환될 경우에는 요베티치가 에스쿠데로쪽으로 빠져나와 볼 주위에 수적 우위를 형성하였다.

이번 경기에서 보여준 이들의 공격 형태는 결과적으로 '측면'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좌/우에 각각 2-3명의 선수들을 배치하여 유기적인 움직임을 통해 레스터 시티의 수비 진영을 야금야금 먹어가는 것이다. 나스리가 좌/우로 폭넓게 옮겨 다니는 프리롤 역할을 맡은 까닭도 이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세비야는 본래 자신들의 의도대로 공격을 해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앞서 소개한대로다. 레스터 시티와의 공/수 전환 속도 싸움에서 밀렸기 때문에. 아니, 상대가 잘하는 것을 이들이 더욱 잘하려 하기 때문이었다.

레스터 시티가 전방 압박 이후 빠른 수비 전환을 행할 때, 세비야는 그 전환 속도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빠른 템포의 공격 전개를 이어갔다. 빠른 공/수 전환이 레스터 시티의 최대 장점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인데도 말이다. 삼파올리의 선수들은 빠른 공격 전개가 아닌 적절한 템포의 전진, 또는 느린 템포의 페너트레이션 단계로 이어가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그래야지 유기적인 움직임을 통해 상대 상대 수비진을 야금야금 먹어갈 수 있는 공격 전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비야가 너무 성급했다. 이들은 침착할 필요가 있었다. 

세비야는 무리뉴가 바르셀로나를 상대하며 언급한 "당신이 페라리를 타고 내가 경차를 타는 데 경주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이기려면 당신의 자동차 타이어에 구멍을 내거나 연료탱크에 설탕을 집어넣는 수밖에 없다"라는 말을 기억해야 했다. 


셰익스피어 감독이 이뤄낸 레스터 시티의 챔피언스리그 동화. 과연 그 기적 같은 이야기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8강이라는 높은 벽을 이겨낼 수 있을까? 이들의 새로운 도전에는 다시 시작의 막이 올랐다.